[밤과 낮] 2013 관훈갤러리 공모전 ARTIST OPEN CALL 당선작가展
조광제 철학, 미술평론
정희정, 그녀가 이번 첫 개인전을 통해 당당한 작가임을 알린다.
첫 개인전을 여는 작가일 리가 없다고 할 정도로 그녀의 작업은 분명한 자신만의 스타일을 획득하고 있다. 그녀의 작업 영역은 분명히 사진이다.
하지만 사진의 디지털적 편집의 논리를 최대한 활용하여 “아브젝시옹abjection”의 영역으로 치고 들어감으로써 사진의 가능성 영역을 심도 깊게 확장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정희정의 작업을 ‘포토 아브젝시옹photo-abjection’이라 지칭하고자 한다.
크리스테바(Julia Kristeva)에 의해 조성된 개념인 “아브젝시옹”은 ‘혐오스러운 매력’을 제공하는, 대상 아닌 대상인 “아브젝트abjet”를 여실히 만났을 때 겪게 되는 체험이다.
토사물, 끈적한 땀이나 정액 또는 월경혈, 섞어가는 시체, 검은 곰팡이가 슨 우유 피막 등처럼, 삶을 위해서 분비 배출하지 않으면 안 되는, 그러나 역겹기 때문에 철저히 배제 축출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들이 바로 아브젝트에 속한다.
중요한 것은 어떤 것이 아브젝트로서 작동하기 위해서는 혐오스럽기만 해서는 안 되며 혐오스럽기 때문에 오히려 충분히 매력적인 존재로 다가오는 것이어야 한다.
이때 혐오스러움은 무의식에서 의식으로 올라오는 방향의 감정이지만, 매력은 의식에서 무의식으로 내려가는 방향의 감정이다.
이 두 방향의 감정이 하나로 결합됨으로써 아브젝트가 성립하고, 그 아브젝트와의 여실한 만남을 통한 아브젝시옹이 성립한다.
전자의 방향은 죽음을 활용하는 삶의 방향이고, 후자의 방향은 삶을 활용한 죽음의 방향이다. 그러나 두 방향은 뫼비우스 띠와 같아서 기실 어느 한 쪽만을 따로 분간해 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말하자면 삶과 죽음의 구분이 불가능한 그 섬뜩한 경계에서 아브젝트가 성립하고 아브젝시옹의 체험이 일어난다.
정희정의 작품은 예외 없이 이러한 아브젝트를 구성하고, 따라서 관람자로 하여금 아브젝시옹의 체험에 빠져들게 한다.
멀쩡하게 살아있는 것조차 기실 죽음의 은유이고, 죽어 있는 것조차 기실 살아있음의 의미이다. 그래서 그녀의 작품에서 살아있음과 죽음은 정확하게 구분이 안 된다.
예컨대 에서 창틀과 그 사이로 보이는 풍경은 창틀에 앉은 한 마리의 나방에 의해 섬뜩하게 살아있고,
에서 초점을 받아 정면에서 부각되는 죽은 개의 모습은 오히려 풍경 전체를 섬뜩하게 살아있게끔 한다.
에서 다소곳이 두 손을 모으고서 가면을 통해 관람자를 향한 강렬한 눈으로써 오히려 죽음을 노려보고 있다.
에서는 열정적인 사랑을 은유하는 것 같은 사과를 이마에 올려놓고서 온 얼굴이 열꽃으로 만개한 채 죽은 여자는 그 사과를 향한 눈빛으로 번연히 살아있다.
그 살아있음이 배경에서 다섯 남자가 무덤을 파는 것 같은 모습과 겹침으로써 다시 죽음으로 내려앉고 있다.
그녀의 작품에서 이러한 살아있음과 죽음의 은유적 의미의 교차를 이끄는 아브젝트의 특별한 모티브는 나방 또는 나비이다. 나비의 존재는 극히 이중적이다.
주로 아름다운 날개와 부드러운 날개 짓을 통해 한껏 매력을 풍기지만, 그 몸체는 털이 무성한 채 더럽기 이를 데 없는 애벌레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잠, 에피소드 2>에 속한 한 작품에서 보이듯 더욱이 나비들이 떼로 덤벼들어 죽은 시체를 파먹고 있는 모습을 볼라치면 그 섬뜩한 아름다움은 더욱 배가된다.
그래서 나비가 나방으로 변신한다. 나방이 지닌 그 회갈색의 날개와 목 메이게 하는 그래서 또는 목을 조이는 그 잔털의 날림은 우리를 죽음에로 이끄는 섬뜩함의 정확한 표상이 아닌가.
그런데 그녀는 이 나방의 섬뜩함을, 그 섬뜩함과 결합되어 있기에 의심스럽기 짝이 없는 환희와 연결시킨다.
작품 이다. 핑크빛 구두를 신고서 춤추는 여자의 명랑한 생명성이 회갈색 나방들의 군무와 뒤섞여 최고도의 우울과 결합된다.
글쎄, 어쩌면 이 작품이야말로 애브젝트를 중심으로 한 초현실주의적인 세계를 그야말로 ‘혐오스러운 매력으로써’ 구현해 낸 걸작이 아닌가 싶다.
열린 문으로 쓰러져 있는 거대한 새의 반쯤 보이는 날개들, 왼쪽 거울을 통해 발가벗고서 성행위 중인 것 같은 엎드린 여자, 그 거울 속 한 쪽에서 거울 속을 들여다보고 있는 실루엣의 여자, 희끄무레하게 빛나며 멈춰 선 괘종시계 등,
이 작품을 구성하고 있는 요소들과 그 자태들 그 어느 것 하나도 예외 없이 나름의 기능을 최대한 발휘한다.
이 은 심지어 컴퓨터-디지털적인 사진 자체가 처음부터 ‘혐오스러운 매력’을 발산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떠올리게 할 정도로 완벽하다.
에 필적할 정도로 강렬하면서도 한 점 군더더기 없이 잘 구성된 작품이 이다.
창을 통해 실재의 무의식과 거울을 통한 가상의 현실을 대비시킴으로써 아이러니의 역설을 기가 막히게 보여준다.
이불에 덮였으나 드러나 있는 발가벗은 두 다리, 붉은 혀를 내밀고서 그 사이를 탐하는 한 마리의 개, 개의 여지없는 관음증의 욕망과 겹치는 거울 속 가면을 쓴 구경꾼 두 여자,
그리고 무엇보다 방의 공간 속에 들어와 있는 미니어처로 처리된 놀이터의 기구들, 게다가 창밖으로 보이는 아무 탈 없이 무색하게 배치된 풍경, 그 풍경에 넘쳐날 것 같은데 방안으로 쏟아져 들어와 한 쪽에 비켜나 있는 찬연한 햇볕,
에서 보인 것과 똑같은 시각을 가리키고 있는 멈춰 선 괘종시계 등. 이 정도로 치밀하기 이를 데 없는 구성을 위해서는, 삶과 죽음을 뒤섞고, 명랑과 우울을 완전히 겹치게 하고, 의식과 무의식을 마음껏 넘나들고,
현행의 에로티즘과 관음의 냉소를 결합하는 작가의 강렬하기 이를 데 없는 아브젝트한 내면적 시선의 위력 외에, 냉철하기 이를 데 없는 예술적 구성을 위한 지성적 논리가 겸비되어야 한다.
작가 정희정은 예술의 세계를 작품으로 펼쳐내기 위한 이 두 가지 역량을 충분히 체득하고 있다.
하지만, 강조되어야 할 것은 무엇보다 강렬하기 이를 데 없이 발휘되는 아브젝트한 내면에서 분출되는 그녀의 예술적 시선이다.
다소 희극적이면서도 제목과 더불어 섬뜩한 느낌을 주기에 충분한 ,
버려져 쓰레기로 처리된 식물들에 뒤덮인 채 황망하게 드러난 발가벗은 두 다리가 바로 옆에 방치되어 있는데도 태연하게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는 두 여고생의 대화 장면을 담은
작가 정희정의 예술적 시선이 어찌 잔인하기 이를 데 없다고 하지 않겠는가. 예술적 시선은 우선 잔인해야 한다.
그래야만 잔인하기 이를 데 없는 이 일상의 삶을 전복시킬 수 있다. 그 잔인한 시선에 철저히 냉철한 손길이 결합됨으로써 정희정은 그녀만의 ‘포토-아브젝시옹’의 경지를 열어젖히는 데 성공하고 있다.
남은 문제는 이를 철저히 염두에 두고서, 어떻게 하면 가끔씩 드러나는 인위적인 냄새를 완전히 제거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럼으로써 이나 과 같은 완벽한 작품을 계속 제작해 낼 것인가이다.
‘Photo-abjection’, Huijeong Jeong’s World of Art
Huijeong Jeong is making an announcement through her first solo exhibition that she is a full-fledged artist.
Her own style has been obtained so clearly this exhibition wouldn’t be seen as her first solo exhibition. She obviously works within the field of photography.
however, she is profoundly expanding the feasibility of photography by breaking into an area of “abjection” with the maximum utilization of digital editing.
This is why I intend to call Huijeong’s work as ‘photo-abjection’.
Developed by Julia Kristeva, the concept of “abjection” refers to the experience you go through when encountered apparently with “abject” which provides ‘repulsive attractiveness’.
Those that need to be secreted/excreted, but still to be excluded/expelled due to their repulsiveness such as vomit, sticky sweat/sperm, menstrual blood, a decomposing corpse, surface film formed over milk covered with black mold, all belong to the category of abject.
What is important for an object to act as ‘abject’ is not just its repulsiveness; rather it should be considered as a being attractive enough for its repulsiveness.
Repulsion here is the emotion in the ascending directions, from unconsciousness to consciousness, and attraction is the emotions in the descending directions, from consciousness to unconsciousness.
These emotions in two different directions are connected to form abject, and the realistic encounter with the abject makes abjection come into existence.
The former represents the direction of life utilizing death; the latter, the direction of death utilizing life.
However, it is impossible to identify one direction against the other in that these two directions are similar to Mobius strip. In other words, abject comes into existence at the macabre border where it is impossible to distinguish life from death, and so does the experience of abjection.
Huijeong’s work constructs such abject without an exception, which enables the spectators to fall into the experience of abjection.
In fact, being alive is a metaphor of death, and death denotes life. For this reason, life and death are not clearly distinguishable in Huijeong’s work.
In , for example, the windowsills and the scene behind them come to life by the moth perched on the windowsill;
the dead dog focused right in front in makes the whole scenery horribly alive.
The girls in are rather intensely staring at death with their eyes facing the audience while they are shyly sitting with their both hands together.
As depicted in the dead woman whose face is covered with red spots, and with a red apple, which looks like a metaphor of passionate love, on her forehead, is abruptly alive by her eyes towards the apple.
Overlapped with the five grave digging men in the background, this aliveness descends back to death.
The special motif of abject in her work that leads to the semantic crossover of life and death is a moth or a butterfly.
The existence of butterflies is extremely twofold. Although they are greatly attractive by their beautiful wings and their fluttering motion, butterflies maintain the characteristics of larvae in the body part, hairy and dirty.
As shown in , the horrifying beauty becomes even greater with a flock of butterflies devouring into a dead body.
Thus, butterflies turn into moths. The greyish brown wings of a moth and its shedding fine hair that chokes us and leads to stranglehold.
This is an exact symbol of macabre which brings us to death. Meanwhile, Huijeong relates this macabre of moths to joyfulness which seems obviously suspicious in that it is connected to macabre.
This is represented in .
The jovial liveliness of a woman dancing in her pink shoes is blended with a group dance of greyish brown moths, to be combined with the highest level of depression.
This work is a masterpiece in which the abject oriented surrealistic world is realized ‘through repulsive attractiveness’.
The every single element consisting of this work and their figures really come into their own: the wings of a lying bird half revealed through an open door, a human figure on four, reflected in the mirror on the left, as if in the middle of sexual act, a silhouette of a woman looking inside the room through the window, and a stopped grandfather clock shining with white tint.
is so perfect that it even makes you think computerized digital photographs are meant to emanate ‘repulsive attractiveness’ in the first place.
Finely constructed without any redundancy, is the work intense enough to be compared with .
This work is doing an excellent job of representing the ironic paradox using a window, by contrasting the unconsciousness of an actual existence and the virtual reality reflected in the mirror.
Two legs still bare while covered in a blanket, a dog with its red tongue sticking out coveting the chasm between them, two masked female spectators in the mirror overlapped with the dog’s voyeuristic desire,
and on top of all these, the miniaturized playground rides relocated into the room, the bland everyday landscape, dazzling sunlight drawn aside in the corner of the room although it seems it would fill up the whole room,
the stopped grandfather clock indicating the same hour as in .
In order to create a composition finely organized to such extent, an artist should be equipped with intellectual logics for cool-headed artistic composition as well as the intense power of an internal eye for abject which is so powerful that it blends life with death,
makes joyfulness and gloominess perfectly overlapped, freely crisscrosses consciousness and unconsciousness, and combines current erotism and voyeuristic cynicism.
Huijeong Jeong, as an artist, has acquired these two capabilities sufficient enough to unfold her world of art into work.
What should be emphasized is the artist eye of hers spewing from inside of abject flamboyantly exhibited in her work.
The artist eye of Huijeong is proven to be cruel as shown in the works such as
horrifying enough along with the somewhat comical title, and in which two high school girls are conversing in a nonchalant manner with two bare legs abandoned right next to them, covered in plants depicted as trash.
An artist eye needs to be cruel, which is prerequisite for overturn of the routine life that is extremely cruel.
Cruel eye combined with thoroughly calm touch, Huijeong Jeong successfully reaches a certain level of photo-abjection of her own.
What is left to do is to figure out how to completely eliminate the trace of artificiality which oozes out occasionally,
and also to continue on producing works of perfection such as ‘Her Dancing’ or ‘Under the Blank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