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먼 풍경

반복되는 꿈에 대한 최초의 기억은 7살 가을 무렵이다. 80년대였고 주공아파트에 살던 나는 단지 내 유치원에 다니고 있었다. 여름방학이 끝나고 근교의 주택가로 이사를 하게 되었을 때 장소에도 바깥이 있다는 느낌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더구나 이사 온 집과 옛 동네 사이를 잇는 거리는 마치 폐허와 공동묘지가 합쳐진 괴상한 것이었다. 걸어서 5분이면 도착하던 유치원은 느닷없이 황야를 횡단해야 하는 야생의 거리가 되었고 아파트 바깥은 끝을 가늠할 수 없는 세상의 변두리처럼 보였다. 그런데도 정든 친구들과 헤어지는 게 싫었던지 생전 처음 버스를 타고 통원하게 되었다.

노선이 단조롭고, 반복되다 보니 낯선 풍경마저 눈에 익었고 유치원이 끝나고 함께 놀던 친구들과 정류장까지 걸어가게 된 어느 날 두 친구에게 은밀한 제안을 하였다. 아파트 단지밖에는 다른 세상이 있다고, 계단 대신 마당이 있는 집들이, 옥상에는 밤마다 은하수가 흘러가고, 뒷산에는 산딸기가 지천이며, 토끼와 거북이도 산다고. 지금 내가 가진 것은 버스 토큰 한 개뿐이니 우리 집까지 함께 걸어가자고. 마치 처음부터 그러기로 한 것처럼 바깥을 향한 우리의 행진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버스를 탔을 때처럼 점심 먹기 전에 집에 도착할 수 있을 거라 여기며 길을 나섰던 우리는 해 질 무렵에야 동네 어귀에 겨우 도착할 수 있었다. 동구 밖까지 나와 서성이던 엄마한테 붙들리기 전까지 이야기하던 꿈 같은 약속들은 행방불명된 우리들 때문에 유치원이 발칵 뒤집히고 놀란 얼굴로 찾아온 부모님과 택시에 탄 친구들이 눈앞에서 번개처럼 사라지는 장면으로 끝이 났다.

혼이 나고 굶주렸던 긴 하루였음에도 가장 잊을 수 없는 사건은 우리가 발끝으로 발견한 풍경이었다. 새집과 옛 동네 사이로 난 길은 버스에서 바라본 그것과는 사뭇 다른 것이었다. 어쩌면 세상이 우리를 찾던 그 시간에 집으로 가려던 걸음 사이로 시간의 틈이 벌어져 쓱 하고 발이 빠졌던 것은 아닐까. 헛디딘 그곳에서부터 한 방향으로 나란히 걷던 우리들은 해시계 위의 물체가 되어 자전 방향에 따라 그림자를 만들기 시작한다. 걷기를 통해 시간을 알리는 임무를 수행하는 우리는 걸음을 멈출 수가 없다. 때로는 주운 막대기로 땅을 더듬으며 그림자의 방향을 따라, 길이 끝난 곳에서는 풀벌레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본능적으로 방향을 수정해 간다. 버스의 창밖으로 주마등처럼 지나가던 풍경에는 보이지 않던 시간의 주름들이 꿈틀거리듯 펼쳐졌다.

얼마나 걸었을까 우리의 그림자가 가장 길어졌을 즈음, 태양이 하늘과 땅이 맞닿는 지점을 시뻘겋게 물들이고 있었다. 거대한 붉은 망토가 세상을 덮을 것처럼 어찌나 붉고 환 한지 눈이 멀 것 같았다. 모든 색채의 시작과 종말이 그 중심에 모여 있는 듯했다. 몇 번이고 의자를 옮겨가며 같은 장면을 반복해서 보았다는 어린 왕자의 독백처럼 우리가 함구한 그날의 장면.

세상의 모든 건축물의 자취는 폐허가 되고 윤곽은 유적이 되는 그곳. 하나의 말과 언어가, 건축과 기념물들이, 자연과 문화가, 기원과 종말이 태고의 기억으로 유년기에 새겨진 최초의 사건 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