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원 (성북예술창작 큐레이터)
정희정 작가는 주로 파노라마 영상작업을 통해 자신의 예술적 관심사들을 강하게 각인시켜 가고 있다.
작가의 작업에서 늘 동시에 나타나는 두 개의 다른 세계는 분열적인 제시가 아니다.
작가는 그 사이에서 양측을 매개하며, 강렬한 색채와 대범한 구도, 이미지 삽입 등 묘한 방식으로 느슨한 통합을 꾀한다.
자세히 보면 자연과 인공의 방 모두 원초적인 욕망과 생명력의 메타포들을 심어놓기 위한 숙주이자 투사의 대상으로 쓰인다.
자연의 능선도, 집안의 기물도 모두 그녀의 신체와 욕망과 내밀한 이야기들로 뒤덮여 있다.
때문에 매우 강한 성적 메타포와 초현실적 분위기에 압도되기도 한다.
<붉은 방>(2017) 영상을 제작하면서 섹슈얼리티와 공간의 상관 관계에 대한 의문을 건축물을 통해 이야기해 보고 싶었다는 작가는 , 사실 자연공간에서 인공의 공간인 건축물로 수평 이동한 것에 불과하다.
2015년 산수화를 차용한 영상설치 <벌거벗은 섬>에서도 동일한 관심사와 구조가 나타나는 것을 알 수 있다.
작품을 통해 나타난 지극히 사적이고 어둑한 꿈의 세계, 섹슈얼리티의 억압과 다양한 방식의 투사, 모호하게 남겨진 흔적들, 환경오염으로 인한 기형과 미추의 문제 등은 파편, 잔해, 쓰레기, 추하거나 혐오스러운 대상들로 치부되며
모두 사회에서 제거, 삭제, 도외시, 금기시되어 구석으로 내몰리는 것들이다.
니꼴라 부리요 (Nicolas Bourriaud, b.1965~)는 예술가들을 “사회에서 의도적으로 무시되거나 거부된 파편과 잔해들을 수집하는 사람들
”즉, “고고학자”로 칭하면서, “추하거나 혐오스럽다는 이유로 공적 영역에서 추방됐던 소재를 다시 끌고 와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전면에 내세우는 “이들은 ”마치 보물처럼 쓰레기를 뒤지는“ 사람에 비유했다.
꿈, 기억, 직관, 흔적, 추함, 변이, 성적 욕망 등 주변부의 영역들과 맞닿아 현실이 뒤틀려 담겨 있는 이들의 작업은,
고고학자처럼 쓰레기를 뒤지는 사람처럼, 그저 모호한 통로만을 열어 보여준다.
안락하지 않아도 여기 와보라고, 여기 와서 감각해 보라고 하는 손짓들이다.
그들 역시 우리와 동행한다.
모르는 길 위에서 방랑하고, 위 아래 기준조차 알 수 없는 위계가 파괴된 공간을 부유한다.
다만 우리보다 조금 더 앞서 어둡고 불안한 지대에 발을 디딘 이들은, 때때로 사회학자로, 과학자로, 모험가로, 환경운동가로, 아비키스트로, 미술사로 분해 깃대를 흔들어 주기도 한다.
이런 분열적이고 이중적인 태도는 되려 혼돈의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무가치, 무효용, 현대의 예술과 예술가가 바로 그러한 영역에 새로운 빛을 비추는 역할을 한다면,
네 명의 작가들은 당대 작가로서 적극적은 호흡을 함과 동시에 위로를 주는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