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연한 황홀경> 에로틱 미스터리 스릴러 2016

평론가 류병학

어제 날씨가 화창해 산책 나갔었다.
첫 방문지는 강남역 사거리였다. 방문해야지 하고 늘 생각하다가 어제서야 스페이스22를 방문했다.
정희정 작가의 개인전 <돌연한 황홀경>을 보기 위해서였다.
전시장에는 사진들과 회화 그리고 애니메이션 한 점이 전시되어 있었다.

어제 산책의 결론부터 먼저 말하겠다. 한 마디로 환상적인 산책이었다.
이를테면 정희정의 <돌연한 황홀경>은 제목 그대로 생각지도 못한 일로 갑자기 황홀경에 빠지게 했다고 말이다.
하지만 내가 황홀경에 빠지면 빠질수록 수수께끼 같은 미스터리에 빠진다.
그런 점에서 정희정의 <돌연한 황홀경>은 일종의 ‘미스터리 스릴러 전시회’라고 할 수 있겠다.
왜냐하면 그녀의 작품들을 보노라면 나의 심장이 쫄깃쫄깃해지기 때문이다.
아파트 단지의 놀이터에 버려진 거대한 토끼인형 사진인 <장미 빛 인생>, 강을 사이에 두고 후경의 아파트 단지의 불빛과 전경의 강가 배와 돌들 사이에 피어난 잡풀들에서 반짝이는 반딧불들의 <밤 눈>,
거대한 아파트 단지와 잡초들로 무성한 웅덩이에 버려진 붉은 외투의 <오래된 묘비>, 잡초가 무성한 아파트 단지에 서있는 토끼 가면을 쓴 남자의 <나의 플래시 속으로 갑자기, 흰> 등등.

정희정의 사진들은 마치 범행현장을 폭로해 놓은 것처럼 보인다.
따라서 정희정의 사진들은 나에게 스스로 추리를 통해 사건의 실체를 파헤치도록 유혹한다.
하지만 나는 곧 미궁에 빠진다. 왜냐하면 그 사진(사건)들은 단편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희정은 ‘밀당’의 고수다. 내가 작품읽기를 포기하고자 하면 ‘친절하게도’ 나에게 하나의 ‘단서’를 제공하니까.
3대의 프로젝터를 사용하여 하나의 거대한 파노라마 애니메이션으로 보여주는 <풍경-바람의 얼굴>(2015)이 그것이다.
산책하듯 서서히 움직이는 이 애니는 사진들과 그림들에서 보았던 ‘사건들’을 마치 하나의 스토리처럼 편집해 놓은 것이다.
버뜨(BUT), 그 애니는 ‘파노라마’라기보다 차라리 원형극장의 뫼비우스 띠처럼 시작과 끝이 없다.
결국 나는 다시 미스터리의 미궁에 빠진다. “그래, 그건 사건(전시)를 본 나도 알고 있다. 근데 니가 말하는 수사결과(해석)은 뭐냐?”
조타! 난 그 애니 <풍경-바람의 얼굴>에서 하나의 ‘실마리’를 찾았다.
실마리? 그 애니는 (두 차례로 반복된) 사계절로 표현되어져 있다고 말이다.
따라서 나는 사계절을 따라 ‘사건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다.
물론 나는 사건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다고 말했지 사건의 ‘실체’를 파악할 수 있다고 말하지는 않았다.
그런 까닭에 나는 정희정의 <돌연한 황홀경>을 일종의 ‘미스터리 스릴러 전시회’라고 말했던 것이다.
만약 ‘사건의 실체’를 파악하고자 하시는 관객이 있다면, 스페이스22에 비치된 정희정의 2권의 책을 꼼꼼하게 참조하시기 바란다.
그림책 <풍경산책(風景散策)_시간을 거닐다>(2014)와 도록 <청산별곡>(2013)이 그것이다.
그 두 권의 책에는 이번 <돌연한 황홀경>에 빠진 몇 단서들(작품들)이 포함되어 있다.
그 사례로 두 가지만 들어 보겠다. 야산에서 담요를 둘러쓰고 마을을 내려다보는 뒷모습의 그림인
<겨울의 심장>(2015)은 야산에서 우비를 입고 마을을 내려다보는 뒷모습의 사진인 <우는 새>(2013)와 <달빛 아래서>(2013)와 문맥을 이룬다.
그리고 두 손을 서로 잡고 바다를 바라보는 두 소녀의 뒷모습을 그린 <바람의 서쪽>(2015)은 달동네 계단 위에서 두 손을 잡고 마을을 내려다보는 두 여학생의 뒷모습을 촬영한 <노을>(2013)로 유추해 볼 수 있다.

이런 단편적인 사례들은 다음과 같은 추론을 하게 한다.
정희정은 개인전 <돌연한 황홀경> 오픈 전에 ‘떡밥’들을 열라 던져 놓았다는 것을 알려준다.
따라서 관객은 정희정이 만들어놓은 ‘사건(ARG)’들을 마치 퍼즐처럼 맞추어나가야 한다.
머시라? ARG가 모냐고? ARG는 Alternate reality game의 약자로 ‘대체현실게임’을 뜻한다.
이를테면 어떤 가상의 사건이 현실에서 일어났다는 가정을 두고 직접 관객들이 참여하는 게임을 뜻한다고 말이다.
두말할 것도 없이 정희정은 그림뿐만 아니라 사진도 가상의 사건을 현실에서 일어난 것처럼 가정을 두고 디지털로 ‘조작’한 것이다.
만약 당신이 정희정의 ‘대체현실게임’에 참여하게 된다면, 당신은 똥꼬를 조아리고 긴장감과 몰입감에 빠질 뿐만 아니라 쏠쏠한 재미도 즐기게 될 것이다.
이미 ‘대문’에 ‘스포일러(spoiler) 없음’이라고 밝혔듯이 여러분들이 직접 전시회를 보고 사건을 해결해 보시기 바란다.
전시는 4월 25일까지다. 전시를 볼 수 있는 날은 내일 딱 하루 남았다.
머시라? 어제 이 단상을 올렸으면 휴일인 오늘 전시를 방문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요?
스페이스22는 일요일 휴관하고 월요일 문을 연다. 만약 당신이 내일 스페이스22를 찾지 앉는다면 졸라 후회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정희정의 <돌연한 황홀경>에는 단지 미스터리 스릴로만 국한치 않고 ‘에로틱’ 스릴러로도 열려져 있기 때문이다.

궁금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