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없는 풍경 A bizarre scene 전>, 성북예술가압장, 서울

아티스트 토크, 성북문화예술센터 큐레이터 김소원과 인터뷰

  1. 자기 작업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요소는 무엇인가?

분위기. 음악적 기조처럼 모든 이미지에는 그에 꼭 맞는 소리가 있는 거 같습니다. 그게 침묵이라고 할지라도 말입니다. 그것은 색으로 표현되기도 하는데 언어적 논리의 메시지보다는 감각적인 분위기를 많이 고려합니다

2. 작업을 통해 궁극적으로 무엇을 얻고 싶은가? 혹은 얻고 있다고 여기는가? (정신적, 물리적 어떤 것이든)

제게 작업이란 여느 직업과 다를 바 없는 힘든 노동입니다. 가령 일반 회사원에게 얻는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흔히 생계유지와 같은 답변을 상상해 볼 수 있을 거 같습니다. 하지만 작업은(예술 활동) 사회에서 일종의 ‘잉여 노동’ 같습니다. 그렇기에 제 경우 ‘무엇을 얻기 위해서’라면 시작조차 힘들었을 것입니다. 비유적으로 말하면 일종의 ‘여행’인데 마치 여정을 통해 길을 만들어 가는 것처럼 대게 과정에서 무언가 개인적인 보상을 받습니다. 그 보상이란 나 자신을 뛰어넘는 순간들입니다. 그것은 객관적인 지표도 순전히 개인적인 느낌에 국한한 것으로 그것을 얻고 싶어서 작업을 한다기보다는 과정 자체에 그런 보상이 함께 한다고 생각합니다.

3. 어떤 계기로 미술을 전공하게 되었으며 작가의 길에 들어서게 되었는가?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고 천성처럼 붙어 다닌 기질 같은 것이어서 미술을 전공 한다는 것은 특히나 대학 진학률이 높은 한국 사회에서 그 선택에 한 치의 의심이나 망설임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작가의 길에 들어서는 것은 좀 다른데 불분명한 이유로 지금, 여기 ‘작가의 길’에 서 있습니다. 작가라는 정체성은 마치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처럼 미래 완료형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4. 파노라마 영상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며, 작업 시 가장 힘든 요소가 무엇인가?

최근 몇 년 동안 풍경을 주제로 사진 작업을 해 왔습니다. 풍경이라는 장르에 대해 동서양의 다른 접근과 작업 과정에서 생겨난 산책자의 경험 자체를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 해 보고 싶었던 것이 계기가 되었습니다. 가장 힘든 요소라고 하면 디지털 기술은 회화와 달리 계속 바뀌고 포맷에 따라 효과가 달라지는 데 그런 속성 변화를 계속해서 개발하고 적용해 봐야 한다는 점을 들 수 있을 거 같습니다.

  • 여기서 말한 ‘산책자의 경험’은 은유인가? 아니면 평소 산책을 즐기는지? 실제와 관련된 이야기라면 산책과 관련된 에피소드나 계기를 듣고 싶다.
  • 은유라면 좀 더 구체적인 이야기를 부탁한다.

둘 다입니다. 저는 걷기 예찬자이며, 평소 산책을 자주 하는 편입니다. 산책자라는 직업이 있다면 열심히, 성심으로 임하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산책하면서 많은 아이디어를 얻고 생활 속의 문제들이 풀리는 경험을 합니다. ‘풍경은 조망이 아니라 걷기’라는 생각이 파노라마 작업의 시발점이었고, 그것은 풍경에 대하여 일반적으로 떠올리는 원근법적 시각이 아니라, 즉 대상화하는 관점보다는 걷는 과정을 통해 환경과 관계를 맺는 곳에서 풍경이 발생한다는 은유이기도 합니다. 

  • 모든 작업 과정을 스스로 하고 있는지? 디지털 기술 포함.

포맷에 따른 효과변화는 조금 더 부연 설명 바람.

모든 작업 과정을 거의 혼자 하는 편이나 변화하는 기술에 대해서는 자문을 구하고 전문가의 도움을 받기도 합니다. 포맷에 따른 효과의 변화는 기술이 빠른 속도로 변하는 것에 관한 것인데 예를 들면 ‘벌거벗은 섬’을 제작한 플래쉬라는 프로그램은 일반 영상 포맷보다 가볍고 모듈 적 성격 때문에 수년 전만 해도 매우 인기 있는 소프트웨어였지만 지금은 사용자도 거의 없고 개발도 하지 않으므로 재생시킬 포맷 자체가 사라질 전망입니다. 마치 옛날 유선 전화기가 좋다고 해서 그것을 혼자만 사용할 수 없는 이치와 유사할 거 같습니다.

5. 파노라마 영상의 제작 방식과 소요 시간은 어떻게 되는가?

소요 시간은 작품마다 다른데, 가령, <벌거벗은 섬>의 경우는 수개월이 걸리는가 하면 <붉은 방>같은 경우는 몇 주로 충분했습니다. 제작 방식은 유사합니다. 사진을 소스로 하는 경우도 있고 페인팅이나 드로잉을 소스로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필요에 따라 장면에 애니메이션 작업을 추가하는데 디스플레이 방식이나 포맷 등에 대해 계속 고민 중입니다.

6. 작업 내용의 영감은 주로 어디서 얻는가? 가능한 구체적으로.

일상에서 얻습니다. 아이디어를 얻을 때마다 사진 기록과 드로잉을 합니다. 나조차도 작품이 완성된 뒤에서야 그 기록들이 어떤 식으로 작용하게 되는지 알게 됩니다. 가령 최근작 <A night off> 의 경우는 지난 몇 달간 내 몸에 붙어 다니던 모든 여름밤의 공기였습니다. 낮과 비교한 밤이라는 비가시적 풍경과 꿈이라는 무의식적 풍경 사이에서 시작점은 여름 밤의 공기 그 자체였습니다. 사실 이 작업은 2013년에 있었던 <밤과 낮>이라는 전시의 추가 작업처럼 진행되었습니다. 작품의 많은 소재가 반복되고 변주됩니다.

  • 조금 더 구체적인 이야기를 듣고 싶다. 몇 달간 느낀 여름 밤의 공기가 어떠했는지, 그것이 작업에 어떤 방식으로 적용이 되었다고 생각하는지 등…

계절의 변화는 제게 피부로 옵니다. 감각적 경험과 더불어 강렬한 감정적 동기가 함께 옵니다. 매해 여름은 다르게 옵니다. 올해 여름은 무더위가 극심했지만 저에겐 수많은 여름의 기억이 함께 오는 특별한 해였습니다. 한낮의 더위를 피해 저녁 무렵 나선 산책길에서 만난 공기의 감촉은 프루스트의 마들렌 과자와 홍차처럼 우연히 나타나 <A night off>를 만들게 된 동기가 되었습니다. 제게 여름밤이란 멀리서 불어오는 산들바람처럼 감미롭기도 하지만 피부에 소름이 돋듯 서늘한 야생성을 담은 양가적인 이미지를 갖습니다.

7.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야산, 누운 여자, 신체 파편들(특히 성기), 가면 쓴 남자들 … 굳이 심각하게 떠올리려 하지 않아도 성+폭력(강간 등)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이다 보니 생략하기 어려워 질문하게 된다.

질문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였습니다만,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요소들이 성폭력을 떠올리게 하는데 그런 의도인가’라는 질문이라면 성폭력을 묘사한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충분히 읽힐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면 일반적으로 야산에 여자가 혼자 있다는 자체가 현실적으로 흔한 상황이 아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인간의 몸은 살과 기관들, 신경과 뼈로 이루어진 물질적인 조직일 뿐 아니라 성적 욕망과 사회적으로 코드화된 의미들이 새겨진 독해 가능한 실체’ 라고 한 Elizabeth Grosz 의 말이 기억납니다. 왜 흔하지 않고 왜 자동으로 강간 이미지를 떠올리게 되는지 혹은 강간 이미지란 어떻게 재현되는지… 짧은 지면을 통해서보다는 작가 톡 현장에서 다양한 생각들을 나눌 수 있는 흥미로운 주제일 듯합니다.

8. 어떤 작가로 기억되고 싶은가?

매혹적인 작품으로 기억되면 좋겠습니다. 마치 제가 그런 작품을 통해 작가의 길에 들어서게 되었듯이 말입니다.